AI 시대의 철학: 인공지능의 요약을 거부하고 진짜 자유를 읽는 법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과거 그 어느 시대보다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확신한다. 표면적인 삶의 형태만 놓고 보면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이 은밀하게 공생하는 현시대의 자유란, 정교하게 꾸며진 거대한 자연농원 속에 갇힌 동물들의 그것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과거처럼 눈에 보이는 비좁고 답답한 철창만 사라졌을 뿐이다. 철창의 크기를 대폭 넓히고 내부를 야생의 자연 상태와 기가 막히게 비슷하게 꾸며놓는다고 해서 철창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제한된 구역 안에서 허락된 행동만을 하며 그것을 자유라 착각한다. 심지어 복잡하고 깊이 있는 사유의 과정조차 인공지능(AI)이나 얄팍한 요약본에 외주를 주며 스스로 사유의 한계를 긋고 있다.

요약본의 시대, 원전의 고요한 안식처로 향하라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철학에 이끌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불멸의 스승들이 남긴 작품이라는 고요한 안식처를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고 일갈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상아탑 밖에서 철학 고전들이 가진 악명은 대단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난해한 이론들로 가득한 두껍고 지루한 책. 표지에는 십중팔구 우울하고 괴팍해 보이는 늙은 학자가 독자를 노려보는 사진이 박혀 있다.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과거 사상가들의 철학을 먹기 좋게 재포장한 가벼운 해설서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다. AI가 모든 고된 독서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원전으로 넘어갈 유인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진정으로 철학자를 이해하려면 그의 책을 직접 텍스트로 부딪치며 읽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 그 고통스러운 수고로움은 훗날 몇 배의 벅찬 보상으로 돌아온다.

염세주의의 편견을 깨는 쇼펜하우어의 생동감 실제로 쇼펜하우어의 걸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노트와 펜을 들고 수십 시간에 걸쳐 원전으로 읽어 내려가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 여정은 일생일대의 가장 짜릿한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대중은 흔히 그를 비관주의자로 규정한다. 1859년, 71세의 철학자를 담은 흑백사진 속 굳게 다문 얇은 입술과 듬성듬성한 백발은 그런 편견을 부추긴다. 베를린 아파트 복도에서 수다를 떠는 여성들에게 화를 내던 괴팍한 노인의 이미지가 겹쳐지고, 영혼을 파괴할 정도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헤겔 같은 동시대 독일 철학자들과 한데 묶여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세계에 직접 발을 들인 독자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여타 학자들과 달리 대단히 재치 있고 불손하며,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1818년 출간된 이 책의 초판은 30세 청년의 열정과 절박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젊음의 기록이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의 핵심 사상은 놀랍게도 힌두교의 베단타 철학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서양 철학의 정전 중에서도 그를 대단히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았다.

망치를 든 니체, 억압을 부수고 힘에의 의지를 긍정하다 이렇듯 고전의 텍스트와 직접 씨름하며 날것의 생명력을 발견하는 과정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가 그토록 강조했던 ‘자유정신’의 발현과 궤를 같이한다. 서양 지성사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인물이자, 역설적으로 주어진 사회를 가장 숨 막히는 구속으로 느꼈던 니체. 그는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 구속에 길들여진 이웃들의 정신을 흔들어 깨우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했다. 그의 저서 ‘우상의 황혼’에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니체에게 살아있는 존재가 억압받고 위축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가 유고에서 언급한 ‘힘에의 의지’는 타인을 짓밟으려는 저열한 권력욕이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창조하고 표현해 내는 생산력이자 쾌활한 삶의 생명력이다. 저항을 극복하고 내면의 힘이 증대될 때 느끼는 충만함, 그것이 그가 말한 진짜 행복이다. 살아 숨 쉬는 동안 자신의 모든 역량을 극한까지 시험해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정신의 본능이다.

짜라투스트라의 목소리, 시대를 건너뛰어 대중과 호흡하다 니체는 인간을 억압하는 일체의 구속을 깨부수기를 원했다. 하지만 논문이나 잠언처럼 노골적이고 건조한 형식의 글들은 대중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고민 끝에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문학적 장치를 빌려 자신의 철학을 세상에 던졌다. 그의 예상대로 이 책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고, 오늘날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불멸의 고전이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 요약해 준 세계관과 AI가 정제해 준 깔끔한 텍스트에 길들여진 채, 안전한 철창 안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허구적인 자유를 긍정하는 나태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대의 불화와 싸웠던 니체의 망치질과 쇼펜하우어의 생동감 넘치는 문장들을 직접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삶의 생명력과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

Relat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