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사랑, 다시 한 번” — 프라하 전시회, 유럽 아방가르드 중심에 있던 예술가 커플을 조명하다

20세기 유럽 아방가르드 미술을 대표했던 두 예술가, 안나-에바 베르그만과 한스 하르퉁의 격정적이면서도 거의 잊혀졌던 사랑과 창작의 이야기가 프라하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프라하 쿤스트할레(Kunsthalle) 갤러리에서 개최 중인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And We’ll Never Be Parted)” 전시는 노르웨이 출신 화가 안나-에바 베르그만과 독일 태생의 한스 하르퉁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최초의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두 층에 걸쳐 총 350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회화 작품뿐 아니라 사진, 작업 도구, 그리고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된 계기를 담은 극적인 이별 편지까지 포함돼 있다. 이 편지는 두 예술가가 창작의 독립성을 회복한 후, 15년 뒤 다시 결혼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스웨덴 아버지와 노르웨이 어머니 사이에서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베르그만은 오슬로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녀는 1929년 파리에서 하르퉁을 만나 결혼한 후 독일 드레스덴으로 이주했다. 초기에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생계를 이어가며, 반나치 풍자 만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르퉁은 1904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예술가로서 비교적 빠르게 자신의 길을 열었다. 그는 독특한 선 긋기, 소용돌이, 긁힌 자국 등의 기법을 통해 유럽의 앵포르멜(Art Informel)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는 다른, 보다 체계적이고 계획된 그의 표현 방식은 자크슨 폴록이나 윌럼 드 쿠닝의 폭발적인 표현과는 대조적이었다. 하르퉁은 작업 전 소묘와 격자 시스템을 통해 작품을 준비했다.

1932년 오슬로에서 열린 단체 전시에서 두 사람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었지만, 대중과 언론의 관심은 대부분 하르퉁에게 집중되었다. 일부 평론가들은 베르그만을 단순히 “하르퉁 부인”으로만 언급하기도 했다.

1937년 4월 14일, 베르그만은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하르퉁에게 보낸 편지에서 단호하게 이혼 의사를 밝혔다. 그녀는 “다른 남자가 원인은 아니다”라고 밝히며, “성적 관점에서 우리는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독립적인 성장을 위해 결혼 생활을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편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제 나는 혼자 세상 속으로 걸어가려 해요. 그리고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나는 완전히 자유롭고 혼자여야 해요. 집안일이나 잡다한 걱정 없이 오직 나만의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동시에 쉴 수 있는 시간도 있어야 해요.”

베르그만과 하르퉁은 이후 각자의 길에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고, 1950년대 말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결혼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를 넘어, 두 예술가의 상호 작용과 독립성, 그리고 사랑이 어떻게 그들의 예술 세계를 형성했는지를 조명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지 예술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억압과 편견을 넘어선 인간적 연결과 창작의 자유를 향한 투쟁이기도 하다. 프라하에서 펼쳐지는 이 전시는 예술이 어떻게 삶과 사랑, 그리고 투쟁의 흔적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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